no woman no cry 서인도제도의 조그만 섬나라 자메이카. 무덥고 인구 대다수가 흑인으로 구성된 이 영연방의 소국은 세계사와 지구촌에 어떤 비중도 지니지 못하다가 1945년 2월 5일 세계대중음악계를 온통 뒤흔들어버린 노래영웅의 탄생을 알린다. 그의 이름은 밥 말리.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에서 종주국 영국의 해군대좌와 자메이카 여성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했다. 킹스턴에서도 가장 가난한 트렌치타운에서 자라난 그가 보아온 킹스턴은 "뭔가 폭동이 일어난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사회적,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이었다. 어렸을 적 부랑아이긴 했지만 그때 벌써 밥 말리는 자메이카 흑인이 겪는 고통과 권리박탈의 문제점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분노를 전세계에 터뜨리겠다는 혁명적 의식으로 정신을 무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레게'라는 이름의 자메이카 토속음악을 그 수단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2박자, 4박자를 강조한 경쾌한 비트로서 '와우와우'의 리듬기타가 특성인 레게음악을 '가장 공격적인 노랫말'로 물들여 레게를 통한 세계정복을 선언한다. 말리는 노래의 운동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확신했다. 스스로도 "음악으로써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윽고 72년 영국의 아일랜드레코드사와 계약해 이듬해 데뷔작 《불을 붙여라》를 발표, 레게를 자메이카 밖으로 전파하면서 세계팝계에 레게의 불을 붙인다. 그 이후로 말리는 서방세계에 '위험한 아티스트'로 알려졌으며 본인도 〈반역음악〉이란 노래에서 '나의 존재가 바로 반역음악'이라며 자신의 불온함을 시인하고 있다. 말리는 80년까지 통산 10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세계를 향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듯 쉴새없이 고발과 선동의 노래를 외쳐댄다. 오죽하면 자신의 백밴드 이름조차 '외쳐대는 사람들'이란 의미의 '웨일러스'라고 붙였을까. 비록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경계의 대상이었지만(76년에 딱 한곡이 싱글로 발표됐으며 그나마 히트하지는 못했다), 폭정과 압제에 신음하는 전세계 민중들에게 말리는 '희망의 별', '음악의 구세주'였다. 밥 말리의 사상적 밑거름은 자메이카 흑인의 토속신앙인 '라스타파리아니즘'이었다. 라스타파리아니즘이란 아프리카 이디오피아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3 공때 한국방문)를 가리키는 자 라스타파리(Jah Rastafari)를 신으로 섬기며 자신들의 고향이자 약속의 땅인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는 것을 교리로 하는 신앙. 연보 1945년 2월: 군인인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로버트 네스타 말리 (Robert Nesta Marly)로 출생하여 트렌치타운(Trenchtown)에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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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입으로 전해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밥말리의 죽음은 누군가 밥의몸에 주사를 투입 하여 암으로 사망 하게한 죽음이라고 전해 지고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밥말리는 Black List 에 오른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의 반항적인 음악을 보아서도 그렇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던걸 보아서도 가능한 일이다. 1980년 John Lenon의 펜에 의한 암살을 보아도 그 뒤에 숨은 말들이 많다. 잔 레넌 역시 Black List에 올랐던 인물로 전해 지고 있다. (밥말리의 Rat Race 음악을 주목해서 들어보길 바란다.) *윗글은 사실이 않일수도 있습니다.* |
누가 뭐래도 그는 레게를 자메이카 밖으로 끌어내 세계화 바람에 불을 당긴 주역이다. 포크 음악에서의 밥 딜런처럼 레게를 논할 때 '레게의 명예로운 시인'으로 0순위로 언급되는 역사적 인물이다. 지난 81년 안타깝게도 뇌종양으로 36세에 숨을 거두고 말았지만 생전보다 사후에 더 유명해져 이제는 전세계 음악인과 팬들로부터 '레게의 전설'로 추앙받고 있다. 그에 대한 재평가 열기가 뜨거워진 것은 레게가 세계 유행음악의 주류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93년부터이다. 이전에도 수차례 레게가 소개되었지만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에이스 오브 베이스' 'UB40' '빅 마운틴'의 레게(풍) 히트곡이 잇따라 등장해 신세대 음악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면서 레게의 초기영웅인 그도 함께 각광받게 된 것이다. 그는 지난해 존 레논, 엘턴 존 등과 더불어 '로큰롤 명예전당'에 이름을 새겼다. 얼마 전에는 그의 주옥과 같은 레퍼토리를 편집한 앨범 <자연의 신비>(Natural Mystic)가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에도 올랐다. 사실 말리의 이름은 미국에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앨범 속지에는 그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공식 티셔츠와 모자를 선전하는 광고물이 게재돼 그의 부활에 편승한 음험한 상업화의 기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레게가 대중음악의 주도적 장르로 부상한 때문인지 말리 앨범들이 속속 출반되고 있다. 명반 《라이브!》등 올해 소개된 것만도 벌써 5장이나 된다. 이러한 그의 앨범 출반 러시는 말리 음악의 본체뿐 아니라 '진정한 레게의 실체'를 알려주는 순기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의 신세대는 레게가 자메이카 흑인들의 분노와 한이 담긴 '반역음악'임을 대체로 인식하지 못한다. 90년대 레게의 흐름인 이른바 '댄스홀 레게'로 인해 그것을 댄스음악으로 여길 뿐 자메이카 철학자이자 마커스 가비의 '아프리카로 돌아가자' 사상에 영향받은 '라스타파리아니즘'을 바탕으로 영미 자본주의의 폭압에 덤벼든 투쟁도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라스타파리아니즘은 아프리카 근대화에 힘쓴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즉위 전 이름이 자 라스타파리)를 구세주로 섬기는 자메이카인들의 신앙이다. 레게는 물론 댄스리듬을 특징으로 한다. 그것을 단지 댄스음악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야 우리 레게가 제대로 수입 가공되고 있는지 비교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레게로 돌아가자 |
출처 :http://myhome.naver.com/choej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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